"입학사정관은 말발ㆍ글발 아닌 노력의 흔적 찾아"

education interview - 국내 첫 입학전형 전문 건국대 문성빈 교수

 

2011학년도 대학 입시에선 입학사정관제로 학생을선발하는 대학이 많이 늘었다.

수시모집에선 105개 대학 3만4629명으로 전년 대비 18개 대학 1만1842명이 늘었고, 정시모집에선 25개 대학 2999명으로전년 대비 5개 대학 1164명이 늘었다.

지난 7월1일, 건국대에서는 국내 대학 최초로 입학사정관 출신 ‘입학전형 전문교수’를 임용했다. 문성빈(37·사진) 교수는 캐나다 맥길대학(화학 전공)을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국제교육정책), 컬럼비아(비교국제교육)에서 각각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은 뒤 2007년에 귀국해 건대 입학사정관실 선임연구원을 지내다 교수로 임용됐다.

지난 7월19일, 사실상 ‘입학사정관 전문교수’나 다름없는 문 교수를 만나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건국대는 2011학년도에 전체 모집 인원의 15%에 해당하는 510명을 입학사정관제로선발할 예정이고, 앞으로 2년 안에 입학사정관제 선발 인원을 30%로 늘릴 예정이다.


 

Q 국내 1호 ‘입학전형 전문교수’다. 직함이 낯설다.어떤 일을 하나?
“지난해 1월부터 건국대 입학사정관실 선임연구원으로근무했다.

입학사정관 본연의 업무는 전형 개발, 연구, 서류평가, 심층면접 그리고 고교 연계를 통한 진학지도 등이었다. 교수로 채용된 뒤에는 입학사정관 본연의 업무에 더해 강의와 심층 연구 등을 하게 된다.

강의는 학생 수요를조사해 내년부터 할 예정인데 교육 정책, 교육 평가, 인재개발(HR) 관련 강의가 될 거다.”


 

Q 건대에서 이런 분야를 신설해 교수 임용까지 한 배경은 뭔가?
“아직까지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하다.

일례로 입학사정관의 전문성, 신뢰성, 공정성 등에 대해 이의제기를 하는 이들도 많다.

외부적으론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알리자는 뜻인 것 같고, 내부적으로는 이 제도를 안정화하고, 관련 연구나 전형 개발,사업 등을 구체화하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Q 중3 때 캐나다로 유학을 갔고, 석·박사 학위를 받을 때까지 줄곧 미국에 있었다.

유학 계기가 있나?
“자유롭게 공부하고 싶었다. 공부를 못하진 않았는데 한문·역사·사회 등 암기식 과목은 무척 싫어했다. 늘 건조하다고 느꼈다.

어느 날, 교육방송에서 봤던 캐나다 교육 다큐 때문에 희망을 품었다. 마침 이모가 캐나다에 계셨는데
“원한다면 와서 공부하라”고 하시더라. 문화적 차이나 언어 등 외국생활이 주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배움에 대한 갈증을 풀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큰 스트레스는 아니었다.”


 

Q 미국의 수업과 평가 시스템은 어떤가?

“‘인디펜던스 스터디’라는 걸 처음 했는데 감동을 받은 나머지 눈물이 다 났다.

일주일 동안 도서관에서 본인이 원하는 주제를 찾아 공부하고 리포트를 써서 내는 거였다.

이게자유구나, 싶었다. 정답을 찾는 공부가 아니라 스스로 자료를 찾고, 연구하고, 논의하면서 답을 찾는 공부였다. ‘과정’에방점을 찍는 평가도 좋았다. 수학 점수가 60점이었는데 교사가 “답만 쓰면 안 되고, 과정을 써야 한다”고 가르쳐줬다.

역사 공부도 정해진 사실관계를 외우는 게 아니라 이런저런 해석이 핵심이란 것도 그때 알았다. 결국 특정 과목이 싫었던게 아니라 암기식 방법을 싫었던 것이다. 한국 학생들을 보면서 “이 학생도 북미에서 수업을 듣고, 평가를 받았다면 굉장한 잠재력을 발휘할 거다”라고 생각할 때가 종종 있다.”


 

Q 암기식 교육 싫어 캐나다로…입시문화 바꾸고파정성평가 신뢰 쌓고 진학상담 전문교사 많아져야 대학에선 화학을 전공했는데 대학원에선 교육으로 전공을 바꾼 이유가 있었나?
“경험해보니 실험을 즐기는 성격이 아니더라.

대학 졸업하고 한국에서 잠깐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그때 내가 가르치는 걸 좋아하고 재능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국의교육시스템 때문에 힘들어하다가 유학을 간 거라서 교육문제에도 관심이 많았다. 교육정책을 바꿀 수 있는 자리에있다면 아이들을 힘든 처지에서 구해주고 싶다는 생각을하다가 교육 공부를 하게 됐다. 우리나라 입시 문화를 바꾸는 데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입학사정관으로일하게 됐다.”


 

Q 2008년도에 서울대가 입학사정관제로 학생을 선발한 뒤로 점차 많은 대학이 입학사정관 전형을 신설했다. 올해 입시 화두도 입학사정관제다. 우리나라 입학사정관제 바람을 어떻게 보나?
“방향 자체는 굉장히 긍정적이다. 염려스러운 건 빠른 시간 안에 결정하고 진행해서 급하게 결과를 내려 한다는 거다. 미국에서는 1920년대에 입학사정관제가 시작됐다.

1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이뤄낸 걸 단시간에 이루려 하니분명 놓치는 부분이 있을 거다.

또 정량평가만을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인식도 문제다. 정량평가만큼이나 정성평가도 중요하다는 신뢰가 생겨나야 한다.”


 

Q 입학사정관제가 나오면서 사교육 시장의 개입, 입학사정관의 자질과 전문성 문제 등도 논의거리였다. 지금은 어떤가?
“입학사정관은 최소 3년 동안 학생이 노력했던 흔적을본다. 사교육에서 ‘말발’, ‘글발’을 올려준다고 하지만, 우리는 자료 안에서 믿을 만한 팩트를 찾는다. 학생이 말한것을 뒷받침할 사실들이 있는지를 본다는 얘기다. 다행히부모들은 그게 학원 보내서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다.

학교도 다양한 노력을 하는 중이다. 대필 의혹이 있으면 심층면접을 하고, 실사도 한다. 건대에서는 비슷한 표현을 적은글 등을 정리해 전산화하고 9월부터 프로그램을 돌릴 예정이다.

입학사정관 수도 늘고 있다. 건국대의 경우 8명에서 20명으로 늘었다. 전문 양성과정도 많이 생겼다.”

 

Q 입학사정관제 전형을 치른 학생 가운데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나?
“재작년에 사학과로 입학한 여학생이 한 명 있다. 이 학생은 역사 분야에 대한 꿈과 목표가 뚜렷했다. 수학·과학은 5, 6등급이더라. ‘공부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사학 분야만큼은 정말 해보고 싶은 공부라서 밤새 공부하고 1등급을놓치지 않았어요.’ 모집단위와 연결해 정성평가를 한 결과,이 학생은 이 분야에 적합했다. 분야에 대한 열망과 자기주도적 문제해결력도 확인했다.

경기도 광주에 사는데 다산정약용의 스승 순암 안정복이 광주에 살았다는 점을 알아내고는 자발적으로 논문을 썼다. 훌륭한 인물을 기념하지않는다면서 시청에 건의해 순암의 묘지를 답사지로 만들었다.

자기주도적으로 문제해결을 한 거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한 것도 연결성이 있었다.”

 

Q 한 분야에만 두각을 드러낸다면 자칫 기초체력이부족하단 비판도 받을 수 있다. 실제 대학 입학 뒤 학교가 원하는 인재로 성장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도들지 않나?
“이 학생을 예로 들면 교양 분야 성적이 월등히 높지 않지만 전공과목은 굉장히 잘한다. 전공교수 말로는 고교 때성향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합격생을 대상으로 성적뿐 아니라 학교에 잘 적응하는지 등도 조사하는 중이다. 모집단위별로 차이는 있지만 전반적인 평균을보면 잘 하고 있다.”


 

Q 선발 방식이 달라지면 고교에서의 연계교육, 정보공유 등도 중요해진다. 실제 잘 이루어지고 있나?
“정부에서 진학 상담 교사를 많이 채용할 수 있게 해줬다는데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다. 필요성은 다 알고 있으니까 발전하는 단계에 있는 거 같다. 고교 교사들이 힘들어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되면서 학생부자료부터 자기소개서, 학업계획서 쓰는 걸 도와야 한다는거다.

미국은 그 업무만 하는 교사가 따로 있는데 우린 교사 한 사람이 하는 경우가 많아서 힘들 거다. 하지만 힘들더라도 입학사정관제에 맞는 학생이 있다면 의견 한 줄이라도 세심하게 신경을 써서 적어줬으면 한다. 그런 자료들이 학생의 잠재력을 평가할 때 굉장히 중요한 요소가 된다.

입학사정관제라는 말은 들어봤지만 아직도 이게 구체적으로 뭔지 모르는 이들도 많다. 정보 소외지역에선 더욱 그렇다. 고교 연계 강화를 위해서 정보 소외계층부터 찾아가서관련 교육을 하고 있는 중이다.”


 

Q 입학사정관제에서 학생을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한요소는 뭔가?
“미국은 서약서 사인 하나만 있어도 이 사실이 진실이라는 게 입증되는 사회다. 근데 우린 이 모든 게 다 거짓일 수있단 걸 전제해야 한다.

안 그러면 사교육 혜택 받은 아이들을 거르기 어렵다.

그래서 면접이 중요해진다. 근데 학생들이 너무 면접 기술에만 신경 쓰지 않았으면 한다. 고교 갓 졸업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화술력을 평가하려는 건 아니다. 우린 면접 기술을 보는 게 아니고 진정성을 본다. 과거의 것을 많이 얘기해보라고 하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고 극복했는지를 통해서 미래를 내다보는 거다.”


 

Q 입학사정관 제도와 관련해 앞으로 대학 입시 정책지형도를 그려본다면?
“입학사정관제와 관련해 표본 집단을 3년 이상 장기간관찰하는 종단연구, 추적연구 결과가 중요하다. 지금 정부가 입학사정관제 선발을 계속 추진하는 한 양적, 질적 팽창은 계속될 거다.

하지만 국고 지원이 끊기는 순간부턴 이선발 방식이 유익하단 결과가 나와야 한다. 유익한 결과가 증명된다면 학교별로 고정적인 전형 방법으로 입학사정관제를 택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한겨례신문 김청연 기자 제공

글쓴날 : [10-10-08 13:59] 정지민기자[crepas20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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